▲ 지난 18일 방문한 필리핀 말라본시 따뇽 바랑가이에 쓰레기가 떠다니는 강변을 따라 목재로 세운
판잣집들이 줄지어 서있다. ⓒ국민일보 이정헌 기자

지난 18일 오후 1시 필리핀 말라본시 따뇽 바랑가이, 나보타스강과 툴라한강이 감싸고 흐르는 이곳은 ‘육지 위의 섬’으로 불리는 빈민촌이다. 강변을 따라 둑과 제방의 사면 위로 나무판자와 철판을 덧대 만든 두세 평 규모의 판잣집이 늘어서 있다. 판잣집 실내에는 축축한 나무 바닥 아래로 강물을 따라 쓰레기가 흐르고, 탁한 강물을 머금은 콘크리트 바닥은 개·고양이의 분변이 뒤섞여 악취를 내뿜었다.

폭 1m에 햇볕이 들지 않는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남쪽 강변에 내륙과 따뇽을 잇는 다리 ‘C4’가 있다. 다리 밑 곳곳에도 판잣집이 벌집처럼 매달려 있다. 다리 아래로 들어가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겨우 몸만 누울 수 있는 높이의 다락방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섯 가족과 함께 사는 고등학생 멜리사 살라맛(18)은 “비가 많이 오면 발목까지 강물이 차오른다”며 “학교 외에는 온종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 따뇽 바랑가이 C4 다리 밑에는 사람이 사는 집이 있다. 다리 밑에 사는 아이들은 다리 밑에서 매일 시간을 보낸다. ⓒ국민일보 이정헌 기자

따뇽은 강변 마을이지만 빗물과 강물을 모아 처리할 수 있는 집수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 통상 필리핀은 5~11월에 해당하는 기간이 우기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류 저지대인 따뇽은 배수체계가 열악해 우기만 되면 강가 주변에 물이 넘친다. 연간 12번 이상 태풍 피해가 발생하고, 특히 C4 다리 밑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행정 당국이 집계한 따뇽의 인구수는 1만4404명, 그중 19세 이하 인구가 5776명이다. 사실상 10대 청소년과 아이들이 마을 인구의 40.11%에 달한다. ‘빈곤 가정’도 1365가구에 이른다. 따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스민 브라간자(45)씨는 “극단적 빈곤 상태의 아이들이 더 많으면 많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면 다리 밑까지 물이 차올라 바닥은 언제나 축축한 상태다. 그물 침대에 매달린 아이들이 이방인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국민일보 이정헌 기자

빈곤의 악순환: 굶주린 아이들은 공부할 수 없다

따뇽 중심가의 다목적홀에선 지난 18일 국제개발협력단체(NGO)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의 후원을 받아 은혜학교(교장 손영경)가 준비한 ‘영양 지원 행사’가 열렸다. 이날 160여명의 아이들은 평소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 루가오(닭죽)를 먹었다. 또 비타민 한 달 치와 학용품, 옷 두 벌씩을 지원받았다.

▲ 따뇽 바랑가이의 한 도로 위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국민일보 이정헌 기자

손 교장은 따뇽의 빈곤이 열악한 주거환경과 영양상태, 그리고 취약한 교육수준으로 악순환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빈곤에서 비롯된 열악한 생활환경과 영양상태가 ‘학습에 필요한 최소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도 결국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은혜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로미니아 바이사(32)씨는 “아이들이 배고픈 상태로 학교에 온 탓에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기도 어렵다”며 “하루 한 끼에 30페소(700원)면 충분하진 않아도 최소 영양은 보충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없는 학생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마리크리스 다카요 영양지원사도 “따뇽에 사는 아동의 20~30%가 영양실조를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단백질 파우더, 비타민 등의 미세 영양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라이프오브더칠드런 소속 박명자(56), 박인순(49) 캠페이너가 지난 18일 따뇽 바랑가이 영양지원 행사에서 아이들에게 옷 두벌과 학용품을 나눠주고 있다. ⓒ 라이프오브더칠드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