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새해 벽두, 네팔로 15일간의 봉사를 떠났던 한신대 16기 해외봉사단 ‘네팔드림’. 라이프오브더칠드런과 네팔드림이 함께한 2주간의 여정은 어떤 색으로 채워져 있었을까요? 학생들의 생생한 후기를 통해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봉사단의 여정을 소개합니다.
취업, 학점, 스펙 고민에 짓눌린 대학생활
“해외봉사를 신청하기 전 나의 학교생활은 그저 반복적이고 의미없는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 나현아 단원
“해외봉사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4학년, 취업이라는 단어들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지만 이때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16기 해외봉사단에 지원하게 되었다.” – 박승철 단원
“낯가림이 심하고 새로운 환경을 싫어하는 터라 낯선 나라인 네팔에서 약 보름가량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었다. 게다가 4학년인 나에게는 따야 할 자격증도 많았었고 걱정거리가 많은 상태였다.” – 이서현 단원
“ 남들보다 늦게 대학생활을 시작한 나는 졸업을 향해 달려가는 학생이었다. 학점 채우기에 바빠 수업 이외의 다른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않은 일이었다. 특히, 나에게 봉사활동이란 중·고등학교 시절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해본 것이 전부였다.” – 최연정 단원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네팔드림 역시 해외봉사를 떠나기 전에는 현실적인 고민에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봉사를 시작하며 학생들의 마음은 조금씩 바뀌어 갔어요.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고 버스로 울퉁불퉁한 산길을 10시간 가까이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바굴릉 마을. 장시간의 이동으로 몸은 지쳤지만,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벅찬 기대와 설렘만 가득했습니다.
1년 동안 봉사단을 손꼽아 기다린 바글룽 아이들
바굴릉 홀리차일드스쿨은 라이프오브더칠드런과 한신대 해외봉사단이 벌써 세 번째 방문하는 곳이에요. 매번 봉사단이 사랑을 듬뿍 주고 떠난 덕분에 네팔 아이들은 손꼽아 다음 봉사단의 방문을 기다립니다.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있는 학교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있는 셈인데요. 올해 네팔드림 봉사단은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1~6학년 아동 250명과 유치부 아동 40명을 대상으로 봉사를 진행했어요.
음악, 미술, 체육, 한글교실 등 다채로운 교육봉사 시간
대부분의 네팔 학교는 정규 과목에 예체능 수업이 없습니다. 아이들의 끼를 발산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인데요. 이점을 고려해 네팔드림 봉사단은 음악, 미술, 체육 등을 중심으로 교육봉사를 준비했어요. 매일매일 조를 나누어 서로 다른 아이들에게 다양한 과목을 지도했답니다.
음악 시간에는 계이름을 배우고 직접 탬버린, 캐스터네츠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한편 기타 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체육은 먼저 키커져라 체조로 몸과 마음을 풀어줬어요. 리듬체조는 물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태권도, 투호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소개했습니다.
미술시간은 만들기를 위주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지갑, 전통탈, 입체안경 등 다양한 만들기로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했습니다.
교육봉사 외에도 신체검사를 함께 진행해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했어요. 바굴릉 아이들은 작년 봉사단을 통해 처음 키와 몸무게 등을 재보았는데요. 1년 만에 다시 만난 아이들은 그새 많이 자라있었습니다.
어릴수록 더 귀엽다! 유치부 아이들
홀리차일드스쿨에는 정규학년 학생 외에도 40여 명의 미취학 아동이 있어요. 데이케어센터 개념으로 교육보다는 돌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네팔드림 봉사단은 간단한 종이접기와 체조 등을 통해 아이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처음에는 봉사단이 낯설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봉사 기간이 지나며 점점 더 마음을 열고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순수한 미소가 가득한 유치부 아이들, 정말 귀엽죠?
교실 새 단장, 사랑을 담은 벽화 작업
네팔드림 봉사단 활동은 크게 교육봉사와 노력봉사로 나뉘었는데요. 노력봉사팀은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난 후 홀리차일드 스쿨 곳곳을 예쁘게 가꾸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홀리차일드 스쿨이 최근에 이사하며 일부 공간은 아직 이사 직후의 삭막함이 있었는데요. 네팔드림 봉사단의 노력을 통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따뜻한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피터팬과 티거, 피글렛 등 익숙한 캐릭터도 그려 넣고 책상도 알록달록하게 색칠했어요.
매일 작업을 이어나갔지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며 밤늦게까지 작업을 할 때도 있었는데요. 몸은 힘들어도 기뻐할 아이들을 생각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덕분에 완성된 공간을 보았을 때는 네팔드림 봉사단도 더없이 뿌듯했습니다.
미니운동회와 문화페스티벌로 장식한 피날레
봉사의 마지막 이틀은 미니운동회와 문화페스티벌로 꾸며졌어요. 미니운동회에는 특별히 7~12학년의 고학년 학생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운동회 하면 빠질 수 없는 줄다리기와 단체 줄넘기, 계주 등으로 시간 가는줄 몰랐습니다. 운동장 바닥이 좋지 않아 흙먼지가 많이 날렸지만, 개의치 않고 함께 땀 흘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망의 문화페스티벌은 네팔드림 봉사단과 홀리차일드 스쿨 학생들이 번갈아 가며 무대를 장식했어요. 봉사단은 K-POP과 플래시몹, 태권도를, 네팔 학생들은 전통춤을 선보였습니다. 문화 페스티벌을 위해 봉사단은 한국에서부터 오랜 기간 춤을 갈고 닦았는데요. 네팔 학생들이 기쁘게 호응해준 덕분에 그동안의 노력이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문화 페스티벌을 끝으로 네팔드림 봉사단의 공식적인 활동이 마무리되었습니다. 2주 남짓,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새 깊은 정이 든 걸까요. 봉사단과 아이들은 서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다가온 이별의 순간에 눈물을 훔쳤습니다.
“문화페스티벌 날 아이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매일같이 볼 것만 같았는데, 너무나도 빨리 찾아온 이별의 순간에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더 열정적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걸, 아이들의 이름을 한 명이라도 더 외워볼 걸 하는 등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아이들이 나의 눈물을 닦아주며 “Don’t cry”라고 해주었다. 아이들의 그 말에 애써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그 말이 더 나를 울게 만들었다. – 최연정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는 못 볼 수 있는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나에게 다가와 I will miss you라고 말하는 아이들, 조용히 다가와 나를 안아주는 아이들, 교육기간동안 잘 따라와줬던 아이들, 선물이라며 편지와 사탕을 주던 아이들 전부가 살면서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을 선물해주었다.” – 이영대
“모든 교육 봉사가 끝나고 ‘아비사’라는 친구가 자신이 만든 종이 장미꽃을 건네주며 ‘한국에 돌아가지 마요.’라며 울상으로 말했다. 그 순간 아이들은 이별을 알고 있었지만 함께한 시간 동안 아낌없이 우리를 사랑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박수현
안녕 네팔, 언젠가 다시 만나요!
네팔에서 돌아온 지 약 한 달. 평소 같았으면 그저 바쁘게 지나갔을 연초지만, 네팔드림 봉사단은 여전히 네팔을 그리워하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언젠가 네팔 아이들을 다시 만날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곤 해요.
누군가를 돕는 일은 참 값집니다. 수고한 네팔드림 20명의 봉사단원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네팔 아이들도 봉사단 덕분에 정말 행복했을 거예요. 잊지못할 청춘의 한 페이지를 막 넘긴 봉사단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칩니다. 함께 응원해주신 후원자님, 감사합니다.
“네팔은 가난하지만 행복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이 너무 지루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만 아직도 네팔을 생각하면 생생하게 기억나고 미소 지어진다. 나는 이 기억을 잊을까봐 무섭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네팔을 생각하며 추억을 되새길 것이다. 함께한 모두가 소감문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뜻깊은 경험과 추억을 만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팔 해외봉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김유리
“제대 후 복학생의 삶은 따분하기만 했다. 쉼 없이 대외활동을 하고, 공모전에 매달려왔다. 많이 지쳐있었다. 그러던 중 해외봉사가 내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었다. 하고 싶던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정말 행복했다. 대학생활의 마지막 페이지를 ‘네팔드림’으로 장식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 네팔드림 사랑합니다!” – 박승철
“해외봉사를 갔다 온 지인들은 항상 ‘해봉앓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좋았길래 ‘앓이’라는 표현을 쓸까 궁금했고 나도 해외봉사를 갔다오면 저 표현을 쓸까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네팔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은 지금도 나는 네팔 아이들이, 네팔에서의 우리 네팔드림이 너무 그립다. 앞으로도 네팔에서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즐거워했던 네팔 아이들, 그리고 늘 내 옆에서 힘이 되어 준 19명의 가족, 네팔드림 정말 고마웠어. 던네밧!” – 박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