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지원 끊긴 미얀마 몬족 마을, '깨끗한 물'을 선물받다[국민일보]
-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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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오브더칠드런, 미얀마 우물 개발 ·방과후학교 후원 동행 취재
2023년 12월 12일자 국민일보 기사
@미얀마 몬 중학교의 빗물 집수 장치. ⓒ국민일보 이강민 기자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지키는 삼엄한 검문소 4개를 지나야지만 도착할 수 있는 중학교가 있다. 태국과 미얀마 국경선의 고산마을 상클라부리 인근에 위치한 미얀마 몬 국립중학교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온 몬족 아이들 70명이 이곳에서 배움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그러나 내전이 심화된 후 외부로부터의 지원은 거의 끊겼다고 한다. 국제개발협력단체(NGO) 라이프오브더칠드런(이하 라칠)은 이곳의 아이들을 위해 우물 개발과 방과후 후원을 시작했다. 이 나눔의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몬 연락 사무소 대표 찬 나위. ⓒ국민일보 이강민 기자
태국 국경을 넘어 미얀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몬 연락사무소'를 들려야만 했다. 이곳은 몬족의 임시정부 역할을 한다. 미얀마 반군인 버마족의 탄압을 피해 온 약 100만명의 몬족을 관리한다. 찬 나위(70) 사무소 대표는 "현재 코로나19 여파와 내전 심화로 태국과 미얀마 양쪽 모두로부터 지원이 거의 끊긴 상태"라며 "교육에 대한 열의는 높지만 자치지구 내에는 중학교까지밖에 없어 아이들이 제대로 된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폐쇄적인 구조 탓에 몬족 아이들은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깨끗한 물'조차 새로운 문물이다. 몬 중학교 근처는 강가나 작은 개울도 없어 빗물을 집수해 식수로 사용해야 했다. 몬 중학교 논 찬(50) 교장은 "늘 물이 부족해 평소엔 빗물을 모아 사용했다"며 "특히 마실 물은 침전을 오래 시켜야 해서 먹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어 교사 미콤보이(32)도 "급하면 걸어서 왕복 40분 넘는 곳에서 마시는 물을 사와야 하는데 돈이 부족한 아이들은 그마저도 먹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난생처음 우물을 선물받다
@몬 중학교에 설치된 우물. ⓒ국민일보 이강민 기자
지난달 27일 기자가 방문한 몬 민족 중학교에선 라칠의 후원을 받은 우물 보수 점검이 한창이었다. "콸콸" 힘찬 소리와 함께 지하에서부터 물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보급하기 위해 과거 일본군이 사용하던 낡은 우물을 개조해 수리했다고 한다. 어제까지 멈춰 있던 우물에서 물이 솟아나자 주변 아이들이 신기하다는 눈으로 힐끔 쳐다보고 갔다.
우물 사업을 맡은 한상수 협력자는 "이 우물은 지하 암반을 뚫어 물을 길어올리는데, 현재 지하 60m까지 파진 상태"라며 "최종 완성되면 1시간안에 8000ℓ 정도의 물이 나오게 돼 아이들에게 충분히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몬 중학교 수돗가에 새로 설치된 파이프와 수도꼭지. ⓒ국민일보 이강민 기자
방치돼 있던 수돗가에도 파란 파이프가 새로 달렸다. 한 협력자는 "우물과 함께 수돗가에도 파이프와 11명 정도가 동시에 쓸 수 있는 수도꼭지를 설치했다"며 "이제 수질 검사가 완료되면 아이들이 바로 물을 마실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우물의 수혜를 받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마을 이장 라이쩌모(61)는 "깨긋한 물이 부족해 마을 주민들이 자주 피부병에 시달렸었다"며 "우물이 생겨 아이들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도움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잡는 색연필, 꿈이 생기다
@방과후 미술 수업에서 그린 아기 코끼리 그림을 자랑하는 즈언 퓨(14). ⓒ국민일보 이강민 기자
이날 중학교에서는 새로 시작한 방과후학교 수업도 한창이었다. 몬 중학교는 라칠의 후원을 받아 한 달 전부터 정규교육 과정 이외에 미술과 영업, 기타 수업 등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선호에 맞게 수업을 신청해 들을 수 있다.
방과후 수업을 통해 새로운 꿈을 품게 된 아이들도 있다. 미술 수업을 듣는 즈언 퓨(14)는 "방과후 학교를 통해 미술 실습을 처음 받게 됐다"며 "너무 재밌어서 수업이 끝난 후에도 색연필과 종이 등을 집에 가져가 꽃과 나무 등을 그린다"고 말했다. 색연필 등 실습 재료가 부족해 지금까지의 미술 수업은 이론 중심이었다고 한다. 퓨는 기자에게 본인이 그린 아기 코끼리 그림을 내보이며 "이제 내 꿈은 화가가 됐다"고 웃었다.
@몬 중학교에서 방과후 기타 수업을 하는 모습. ⓒ국민일보 이강민 기자
다양한 수업과 함께 아이들의 세계는 넓어지고 있다. 기타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뮤지션 슈묵(43)은 "요즘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태국 노래를 기타로 치고 싶어 한다"며 "처음 수업을 시작했을 때는 기타를 잡아본 적 있는 아이 자체가 아무도 없었는데, 그랬던 아이들이 이제는 한 주에 2번씩 수업을 해 달라고 조른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